<웹진/늘푸른나무(www.webegt.com)/ 문화산책/2022년 12월 1일>*<이달의 시-화이트 크리스마스를 위한 사랑의 기도-이채>*<이야기 미국사76-자유방임주의, Laissez-Faire, >*<역사를 바꿔놓은 생각들-소통과 기록의 수단, 알파벳이 생겨나기까지 >*<이달의 시-감사-작자 미상>*<이야기 미국사-아메리카 남부연합국(Confederate States of America)>*<해외에서 활동하는 한국계 작가들-첫 소설 《우리가 무너졌을 때(When We Fell Apart)》를 출판한 순 와일리(Soon Wiley)>

<이달의 시>

화이트 크리스마스를 위한 사랑의 기도-이 채



성탄의 종소리
온 누리의 축복으로 울려 퍼질 때
미움과 미움은
용서의 강물로 흐르게 하시고
마음과 마음은
기쁨의 합창으로 메아리치게 하소서

하늘의 은총
지상의 눈꽃으로 피어날 때
욕심과 불만은
눈처럼 하얗게, 가볍게 하시고
행복과 행복이
감사의 꽃으로 찬란하게 하소서

평화의 메시지
온 누리의 숭고한 빛으로 은혜로울 때
스스로 비우고 낮아지는
겸손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면
비로소 화합으로 하나 되는 세상
사랑과 사랑으로 가슴 벅찬 희망이게 하소서

(이채·시인)

<이야기 미국사>

자유방임주의, Laissez-Faire,

정부는 시장에 최소한의 개입만을 하여야 한다는 경제원리를 지칭하는 자유방임주의는 19세기 미국에서는 지배적인 이론이였고 오늘날도 미국정치의 정치사상가운데서 하나의 강력한 지적 전통으로 남아있다. 일반적으로 자유방임주의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시장이 규제를 받지 않도록 허용하면 모두에게 번영을 가져온다고 믿고있다. 그렇지만 자유방임주의를 비판하는 사람들의 기업들의 착취를 방지할 정부의 규제가 필요하다는 주장은 도금시대(The Golden Age-미국역사에서 산업이 가장 번성하였던 1870-1900사이를 지칭함) 이후 성공적으로 먹혀들고 있다.

프랑스 어로 ‘내버려 두라’는 뜻의 레셀 페어(18세기 일단의 프랑스 중농학자들이 만든 용어)는 19세기 후반에 시작된 상업주의에 대한 반격으로 시작되었다. 1776년부터 시작해서 아담스미스와 그를 지지하는 경제학자들이 상업주의를 거부하고 ,무역정책에서 정부가 개입하는 것에 반대하였다.만약 정부가 옆으로 물러나서 사기업들이 그들의 창안대로 사업을ㄹ 하게 한다면 궁극적으로는 수요공급의 원리가 모두에게 보다 효과적인 경제를 만들어 낼 것이라고 그들은 믿었다.

유럽에서 미국에 이르기까지 19세기 중반은 자유방임주의가 절정을 이루던 시기였다. 일반적으로 노동법이라는 것이 없었으며 기업의 총수들은 종업원들에 대해 전혀 제재가 없는 폭력을 마구 휘둘렀다. 철도회사들은 마음대로 요금을 올렸다.록펠러의 스탠다드 오일 같은 몇몇 큰 회사들은 독점기업을 통해 경쟁상대들을 몰아냈다. 역사적으로 보면 자유방임주의는 미국역사에서 이 시대의 특별히 느슨한 경제정책을 언급하는데 사용되었다.

지나친 장유방임주의에 저항하는 반응들이 1880년대에 힘을 얻기 시작했다. 첫 번째 규제법안 가운데 하나인 The Interstate Commerce Aact가 철도회사들의 영향력을 제한하기 위해 1887년에 통과되었다. 20세기 초에 데어도어 루즈벨트 대통령은 회사들의 권력을 반대하는 운동을 강력하게 벌였다. 결국 1930년대 대공황은 산업과 은행과 연료 등에 대한 새로운 강력한 정부 규제를 통과시키는 기폭제가 되었다.

최근에 와서 자유방심주의 지지자들은 약간의 힘을 되찾았다..1970년대 이후 의회는 항공, 은행,철도 등을 포함한 몇몇 주요 산업들을 전적으로 또는 부분적으로 규제에서 풀어주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현대의 규제상태는 악덕기업인들에게는 새발의 피에 불과하다.

자유방임주의를 지지해온 언론으로는 1843년 창간된 영국의 The Economist가 있는데 지금까지도 계속 출판되고 있으며 자유방임주의 지지 논조를 지속하고 있다.

*The Intellectual Devotional American History 참조

<역사를 바꾼 생각들>

소통과 기록의 수단, 알파벳이 생겨나기까지

인간이 언제부터 언어를 사용하기 시작했을까?에 대해 학자들의 분명한 대답을 기대할 수 없다. 더구나 어떻게 다른 언어들이 생겨났는지에 관해서는 구약 창세기에 바벨탑 이야기가 해답을 시도하지만 정설로 매김하기에는 역부족이다. 그렇지만 다행히도 의사를 소통하기 위하여 문자를 만든 것은 분명히 인간이 이루어 놓은 위대한 발명이 아닐 수 없다.

물론 문자란 한, 두 사람이나 몇몇 나라에 의해 만들어진 것아 아니고 어지러울 정도로 수많은 형태의 문자가 명멸하면서 만들어졌고 문자의 명멸과 함께 민족의 운명도 흥망성쇠를 거듭하였다.

확인된 비로는 중국이 단어를 상징하는 그림을 사용하는 그림문자를 처음 사용하기 시작했는데 그것이 기원전 5000년 경이었다. 그 다음 에짚트가 비교적 오래되었는데 그들의 상형문자는 문자와 그림을 합친것으로 가장 오래된 것이 기원전 3400년에서 3200년 경이다.

상형문자와는 달리 중국의 그림문자는 현재까지도 살아남아서 문자로 사용되고 있다. 그것은 히브리어, 희랍어, 아랍어 그리고 아랍어에서 나온 페르시안 문자 등에서도 마찬가지다. 그 외에도 러시아와 다른 스라브 민족들간에 사용하는 희랍어에서 나온 시리린 문자가 있고 한국의 가나다도 있으며 인도인들이 사용하는 힌두문자도 있다.

그러나 현대에 와서 가장 널리 사용되는 문자는 라틴 알파벳으로 영어와 서방세계의 여러 언어에서 문자로 사용되고 있다. 이 문자는 기원전 3400여년,메소포타미아 문명인 고대 수멜에서 시작된 것으로 설형운자 그림판으로 만들어 진흙판에 본을 떠서 만들었다. 그러나 초기 설형문자체계의 '문자'들은 현대 알파벳과 같이 소리를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한 단어나, 하나의 생각과 동일시 되었다.

알파벳은 보통 페니키아 사람들이 만든 것으로 여겨진다. 지금의 레비논 지역에서 항해를 하면서 상거래를 하던 이들은 그림문자의 숫자를 줄여서 심볼들을 문자로 표현함으로 설형문자를 변형하였다. 그리고 기원전 1000년 경 페니키아 사람들은 고대 희람인들을 접촉하게 되었는데 이때 희랍인들이 페니카아 사람들의 알파벳을 흠수하여 변화시켜 거기에다 희랍 알파벳의 처음 두 글자를 따서 아름을 붙여 현재까지 전해지고 있다고 한다. 희랍인들은 그들의 알파벳을 에트러스탄에 전달했고 그들은 로마인들에게 그리고 로마인들은 다른지역으로 전파하여 오늘의 알파벳으로 발전, 보급되었다.

*TIME 100 Ideas That Changed the World 참조

<이달의 기도>

감사-작자 미상(어느 병실에 걸린 시)

주님! 때때로
병들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인간의 약함을
깨닫게 해주시기 때문입니다

가끔 고독의 수렁에
내던져 주심도 감사합니다
그것은 주님과
가까워지는 기회입니다

일이 계획대로 안 되게
틀어주심도 감사합니다
그래서 나의 교만이
반성될 수 있습니다

아들, 딸이
걱정거리가 되게 하시고
부모와 동기가
짐으로 느껴질 때도
있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그래서 인간 된 보람을
깨닫기 때문입니다

먹고사는 데
힘겹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눈물로써 빵을 먹는 심정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불의와 허위가
득세하는 시대에
태어난 것도 감사합니다
하나님의 의가
분명히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땀과 고생의 잔을
맛보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그래서
주님의 사랑을 깨닫기 때문입니다

주님!
감사할 수 있는
마음을 주심을 감사합니다
(작자 미상)

<이야기 미국사>

아메리카 연합국(Confederate States of America)

아메리카 남부연합국 정부는 1861년 남북전쟁 초기에 남부의 주들이 연합하여 만들었다. 버지니아 주 리치먼드를 수도로 4년 동안 미국의 창 역할을하였다. 이 정부는 미국헌법의 많은 부분들을 보존했지만 특히 노예제도를 보호하는 역할을 하였다.

1861년 초 분리된 주들이 남부연합 헌법을 만들기 위해 알라바마 주 몽고메리에 모였다. 그 결과 남부연합에는 사우스 캐롤라이나, 미시시피, 프로리다, 알라바마, 뇨지아, 루잊아나,텍사스,버지니아, 알칸소, 테네시,노스 캐롤라인나 등이 참여하였다. 비록 남부연합이 크기에 있어서는-당시 미국의 3분의 2를 차지-광대하였지만 주민은 많지 않았고 북부에 비해 산업은 더욱 약세였었다.

남부연합의 지도자들은 1787년 미국헌법에 기초해서 어떤 부분들은 그대로 따오기도 하였지만 몇몇 중요한 차이점들도 포함되어 있는 헌법을 만들었다. 남부연합의 제도아래에서는 대통령은 한 차례 6년 임기제를 채택하였고 미시시피 주의 정치가인 제퍼슨 데이비스(Jefferson Davis 1808-1889)를 1861년 남부연합의 초대이자 마지막 대통령으로 선출하였다.

데이비스를 포함해서 남부연합의 지도자들은 남부의 승부수는 외국의 인정을 받는데 있다고 믿었고 그러면 북부의 정부가 남부의 독립을 인정하는 협상을 받아들일 것이라고 믿었다. 남부는 세계적으로 목화의중심지였다. 그래서 남부의 지도자들은 유럽의 강대국들이 이 중요한 상품에의 진로가 차단되기 보다는 남부연합을 인준하는 방향으로 나와주기를 희망하였다. 그러나 남부연합 외교관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한 나라도 남부연합을 인정하려 하지 않았다.

비협조적인 주지사들의 증가에 속수무책이된 남부연합 정부는 적국을 대항할 수 있는 중요방안을 성공시킬 수 없다는 것을 입증하였다. 1865년4월 북군이 남부연합의 수도인 버지니아의 리치몬드를 점령하자 남부연합 정부는 버지니아 주의 댄빌(Danville)로 퇴각하였으며 그달 말에는 정부자체가 사라져 버렸다.

이렇게 미국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아메리카남부연합국은 4년의 단명으로 막을 내렸다.

 

<해외에서 활동하는 한국계 작가들>

첫 소설 《우리가 무너졌을 때(When We Fell Apart)》를 출판한 순 와일리(Soon Wiley)

미국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순 와일리의 첫 소설 《우리가 무너졌을 때(When We Fell Apart)》는 뉴욕타임스 등 주요 언론에 긴 서평이 실렸다. 올해의 책 후보로도 꼽히고 있다.

뉴욕 Nyack 출신인 SOON WILEY는 코네티컷 대학에서 영어와 철학 학사 학위를 받았다. 그는 위치타 주립 대학교에서 MFA를 취득했으며 현재 존스 홉킨스 대학교에서 작문 석사 과정을 밟고 있다. 

여자친구의 미스터리한 죽음에 대한 답을 찾는 한 젊은 한국계 미국인 남자가 자신의이중문화적 정체성에 대한 영혼탐구여행이 되면서 가족을 묶거나 해체시키는 복잡한 관계를 푸는 심오하고 감동적인 서스펜스 드라마다.

서울 경찰은 민에게 여자친구 유진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알렸으나 사실이 아니라고 확신한다. 그녀는 대학을 졸업하고 그녀가 항상 꿈꾸던 미래를 주장하기 직전에 성공했고 야심차고 행복했다. 
 
반면에 미국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민은 자신의 삶의 길에 대해 유진과 같은 확신을 느껴본 적이 없다. 그는 항상 적응하기에는 "너무 한국적"이라고 느꼈던 캘리포니아에서 성장한 후, 한국 유산을 탐구하는 것이 목적 의식을 찾는 데 도움이 되기를 희망하여 서울로 이사했다. 그리고 유진을 만났을 때, 그들의 평온한 관계가 두 사람 모두에게 비극적인 결과를 낳는 일련의 사건을 촉발할 것이라는 사실을 거의 알지 못한다.
 
유진의 죽음에 절망한 민은 자신이 왜 비밀리에 죽고 싶었는지 알아내기 위해 몸을 던진다. 통제력 있고 강력한 정부 관료 아버지와 매혹적이고 파괴적인 룸메이트 So-ra와의 두터운 우정으로 인해 유진의 삶은 민에게 알려진 것 보다 훨씬 더 복잡했음이 알려진다. 그리고 그가 그녀에 대해 더 많이 알면 알수록, 그는 그녀를 정말로 알고 있었는지 더 의심하기 시작한다.

자아와 성장, 가족의 기대에 대한 고단한 탐구와 유진의 이야기가 민의 이야기와 충돌하면서 결과는 문화적 정체성, 가족 유대, 비밀, 속한다는 것이 진정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 끝없이 의문이 제기된다.

 

<이달의 시>

인생에 가을이 오면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 나는
나에게 물어볼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 나는
나에게 사람들을 사랑했느냐고 물을 겁니다.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 나는
나에게 열심히 살았느냐고 물을 것입니다

 그때 자신에게 말할 수 있도록
나는 지금 맞이하고 있는 하루하루를
최선을 다하여 살겠습니다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 말할 수 있도록
사람들을 상처주는 말과 행동을
말아야 하겠습니다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 나는
내 삶의 날들을 기쁨으로 아름답게
가꿔야겠습니다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 나는
나에게 어떤 열매를 얼마만큼 맺었느냐고
물을 겁니다
그때 나는 자랑스럽게 대답하기 위해
지금 나는
내 마음밭에 좋은 생각의 씨를 뿌려놓은
좋은 말과 좋은 행동의 열매를
부지런히 키워야 하겠습니다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
후회없는 삶을 위하여...
그때 가벼운 마음으로 말할 수 있도록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
나는 나에게 삶이 아름다웠느냐고 물을 겁니다.

*이 시(詩)는 인터넷상에서 윤동주 시인이나 정용철 작가의 시로 인용되고 있으나 
중증뇌성마비 장애인 김준엽 시인의  '내 인생에 황혼이 들면'이 원작이라고 합니다. 

출처: https://kwon-blog.tistory.com/247 [여행과인생:티스토리]

 

<이야기 미국사>

복원 또는 재건(Reconstruction)

남북전쟁이후 재건시대를 풍자한 만화

미국역사에서 재건(Reconstruction)이라는 단어는 1865년부터 1877년까지 미 연방정부가 미국남북전쟁으로 파괴된 남부의 여러 주들을 재건하려고 시도하였던 12년 간을 지칭하는 단어이다. 그렇지만 재건이란 말에는 단순한 물질적인 재건 이상의 뜻을 함축하고 있다. 의회의 명령아래 이 재건 프로그램은 전쟁중에 해방된 전-노예들의 새로운 정치적, 경제적 권리를 확장시켜 주어 남부지역에 급격한 사회적 변화를 유도하도록 추구하였다.

재건의 첫 번째 단계로 1865년부터 정부는 자유인부서(Freedman Bureau)라는 기구를 만들었는데 남부지방에 학교와 병원들을 설립하고, 옛 노예주들과 노예들 사이에 협상과 분쟁을 알선하고 중재하는 일들을 하였다. 애초에 앤드류 죤슨대통령이 의도했던 것은 온건한 단기프로그램이었다.

그러나 1866년 유권자들은 일단의 과격한 공화당원들을 의회의원으로 선출했는데 이들은 죤슨대통령의 프로그램이 너무 미온적이라고 생각하였다. 이들 공화당원들은? 연방정부의 자원들을 전-노예들이 주장하는 정치적 권리를 돕는데 보다 과감하게 사용할 것을 원하였다. 죤슨의 반대를 물리치고 그들은 재건 프로그램을 확장하였으며 자유인 부서도 1869년까지 연장하였다. 이들 공화당원들은 전-노예들에게도 정식으로 시민권과 투표권을 허용하는 미헌법 14, 15 수정안을 통과시켰다.

재건프로그램이란 미국역사상 전례가 없는 것으로 연방정부가 주도권을 가지고 정부권력이 수 백만명의 보통시민들의 생활에 직접 접촉하는 일은 유례가 없는 일이었다. 연방공무원들은 수 천명의 흑인들을 성공적으로 등록시키는데 성공하였으며 그 덕분에 전쟁이 끝난지 10년만에 수많은 흑인 의회의원과 상원의원들이 선출되었다.

이와같은 흑인파워의 갑작스러운 확장에 많은 남부의 백인들은 재건프로그램에 분노하였으며 연방정부의 노력들이 종종 폭력적인 저항에 부딪치곤 하였다. 재건계획에 반대하는 연방군인출신들에 의해 조직되었던 Ku Klux Klun은 1860년대에 남부지역 전역에서 강력한 힘을 행사하였다.

그러나 남북전쟁 이후 재건사업은 1877년 이후 갑자기 사그러져 버렸다. 부분적으로는 1876년 선거결과 때문이라고 하겠다. 연방군들이 남부에서 철수하자 남부의 백인들은 재건사업으로 주어진 대부분의 흑인들의 지위들을 이전대로 돌려놓았으며 남부의 의회들은 자체적으로 흑인차별법(Jim Crow Laws)를 만들어 재건사업이 만들어 놓은 성과들을 무효로 만들어 놓았다.

재건 프로그램에서는 흑인들에게 투표권을 주었을 뿐 아니라 남부군의 장교들과 정치가들의 투표권이나 피선거권을 박탈하기도 하였다. 이때 남부에서는 재건프로그램에 참여한 백인들을 scalawag(건달패)라고 불렀으며 대부분이 연방군이 철수한 후에는 공직에서 쫓겨났다.

표면적으로는 획기적인 흑인정책으로 변화를 묘색하였으나 철저한 후속조치에 소홀했기 때문에 남북전쟁 이후 재건프로그램이 과연 성공했는가?하는 논란이 계속되고 있으며 흑인들의 민권과 차별에 대한 불평은 아직도 미국사회의 가장 큰 과제로 남아있다.

<역사를 바꿔놓은 생각들>

4. 법율에 의한 통치를 생각했던 고대인들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인간사회에는 증오와 시기와 공포가 늘어나고 다른 사람들을 해치는 일들이 빈번해지자 그런것들을 조정하는 수단으로 법에 의한 통치란 것을 생각했던듯 하다. 강자의 폭력에 의해 모든것들이 결정되는 금수의 세계와는 달리 인간사회이기에 강자가 약자를 억압하지 못하게 하는 다른 수단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그것이 신의 뜻을 수행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온 것이 법을 만들고 그에 따라 범법자들을 제재한다는 것으로 인간들이 꽤 오래전부터 생각해 왔고 수행해 온듯 하다.

바그다드의 남쪽 50여 마일 지점에는 지난 수 십세기동안 신화에 덮여있는 유적들이 널려 있었다. 이들 바벨론의 유적들은 오랫동안 전해오는 전설과 이름들로 널리 알려져 있었다. 그곳이 정치의 중심지였다는 것은 고고학자들에 의해? 일찍부터 알려졌지만 당시 바벨론의 실제적인 상황이 어떠했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러나 1901년 이란의 커제스탄 지역에서 프랑스 고고학자가 하무라비 법전이 새겨져 있는 기원전 12세기 경에 약탈당한 석판을 발견하면서 기원전 18세기의 바벨론 상황을 분명히 알 수 있게 되었다.?

7피트(2 미터)의 석판에 282개조의 법율과 처벌조항을 상형문자 이전의 성형문자로 조각한 이 고대 석판은 이미 4천 여년 전에 성문으로 된 법율이 제정, 시행되었음을 보여주며 인간사회에 질서와 틀을 잡아주는 기록된 법율로는 가장 오래된 것이다.

기원전 18세기 초 바벨론의 제1왕조 6대왕이었던 하무라비는 기원전 539년까지 메소포타미아의 중심국가로서 이웃 도시국가들에 대하여 적극적인 정복정책을 펴온 것으로 알려졌으나 그의 정치는 정복에 그친 것이 아니라 정복 이상의 건전한 질서수립에 있음을 법조문들을 통해서 알 수 있다.

하무라비 법율이 오늘날의 기준에 의하면 무척 가혹하다는 느낌을 준다. 예를 들면 도적질하다 잡히면 사형이라는 조문 같은 것은 ‘이에는 이, 눈에는 눈”과 같은 예외 없는 원칙적인 발상이다. 그러나 하무라비의 그와 같은 원칙론은 당시 사람들에게는 공정한 것으로 생각되었고 하무라비는 공정한 통치자로 자리매김하는데 기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한편 고대 이스라엘의 유대교 경전인 토라(구약성경의 모세 5경)에서도 야웨가 이스라엘 백성을 다스리는 기반은 율법이며 유대교 경전인 토라(구약성경의 모세 5경)는 이 율법의 집대성이었음을 알 수 있다.

율법에 의한 통치가 사랑과 자비를 배우기 전, 타락한 인간들의 생존을 위한 하나님의 도구가 법율이라고 고대의 인간들은 생각하였으며 하므라비 법전의 발견은 이 사실을 입증하고 있다. 근대에 와서는 미국의 헌법이 처음으로 만들어진 성문헌법이 되었으며 거의 모든 국가들이 헌법이나 법율을 성문화하여 그에 따라 사회질서를 유지하고 있다

법율을 만들고 그에 따라 엄격하게 다스린다는 고대인들의 생각이 결국 현대에 와서 법치국가의 근간으로 역할을 하였다고 할 수 있다.

미국의 대법원 청사에도 하무라비 석판이 자리하고 법율의 중요성을 상기시키고 있다.

 

<역사를 바꿔놓은 생각들 3>

죽음 이후의 삶’을 생각한 고대인들.

모든 사물에는 ‘정영’’이 있다고 생각했던 인간들은 그 정영들 가운데는 인간의 경배를 받을 가장 높은, 가장 강력한 신이 하나 있을것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생각을 발전시켜 왔습니다.

이렇게 밖으로 향하던 인간들의 생각과 함께 계속 떠오르는 의문은 ‘죽음 이후의 삶’에 대한 생각이었습니다.

인간은 죽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죽음 이후의 삶’이 이 있다고 하는 생각은 무척 일찍부터 가졌던듯 하며 그 흔적을 여기 저기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선사시대의 유물인 고인돌들이 그러한 생각의 흔적을 보여주고 있는가 하면 에짚트의 나일강변에 웅장하게 서있는 기자의 대피라믿이 인간의 가장 오래되고 강렬한 생각가운데 하나였던 ‘죽음이후의 삶’에 대한 관심을 증언하는 가장 오래된 남아있는 기념비 가운데 하나입니다.

사실 인류문명가운데 ‘죽음 이후의 삶’에 대한 나름대로의 개념을 발전사키지 않은 문명은 없습니다. 믿을만한 물적 증거라고 부를만한 것이 없는 상태에서 모든 시대나 문명의 사람들은 무덤이라는 것은 최종 도착지가 아니라 단지 새로운 단계로의 출입구일 뿐이라는 삶의 여정에 대한 청사진에 이르렀습니다.

에짚트인들에게 죽음이후의 삶은 쟈칼머리를 가진 신 아누비스와 함께 영혼의 최종심판을 받으러 가는 여정입니다. 희랍인들은 하데스가 통치하는 지하세계를 상상하였습니다. 그곳은 영혼들이 뱃사공 샤론과 함께 스틱스 강을 건너서 들어가는 곳입니다. 힌두교와 불교에서는 다같이 영혼은 죽음 이후에 다른 인간의 모습으로나 아니면 더 하등 동물의 모습으로 다시 태어난다고 믿었습니다. 낙원이란 이러한 윤회의 수레바퀴에서 탈출하는 효과적인 방법으로 두 종교에서 다같이 현실과 접목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이슬람은 낙원과 지옥의 개념들을 다같이 가지고 있습니다. 기독교 역시 삶 이후의 삶의 구조를 만들었는데 거기에 세 번째 구조물을 첨가하였습니다. 17세기에 교황 그레고리는 13세기에 작은 죄들을 범해서 천당에 들어가기에는 여전히 속죄가 필요하지만 희망이 있는 사람들에게 선고를 임시 유예하는 연옥교리를 자세하게 첨가하였습니다. 이 교리가 교회 재정에 큰 영향을 끼치자 연옥에서 기다릴 영혼들의 시간을 감축하려는 사람들에게 “면죄부”를 파는 데까지 발전하여 종교개혁이라는 큰 사건을 불러오기도 했습니다.

'죽음 이후의 삶'에 대한 관심은 인간의 원초적인 것이며 아무도 경험해 보지 못한 길이기에 고대부터 지금까지, 종교와 종파를 불문하고 구도자들의 한결같은 관심을 끌고 는 생각이 아닐 수 없습니다.

<역사를 바꿔놓은 생각들 2>


2. 다신교를 거쳐 유일신교로.

우주의 모든 사물에는 정령이 존재한다는 선사시대 사람들의 생각은 정령숭배로 진화되었고 나아가서 다신교로 발전하였습니다. 그래서 고대사회에서는 수많은 신들이 존재하였습니다. 고대인들에게는 지역에 따라서, 생활방식에 따라서, 살아가는 지역의 지리에 따라서 나름대로 특별히 숭배하고 섬겨야 할 정령들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기원전 3000년 경의 메소포타미아지역에서는 강신, 산신, 하늘신, 지방신, 동물 대가리 신 등 수많은 도시국가들과 지방의 신들을 합쳐 2000여개의 신의 이름이 문자판에서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그보다 훨씬 후대인 그리스와 로마 시대에도 수많은 신들과 여 신들의 이야기가 전해져 오고 있는 것을 우리는 신화들을 통해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그 많은 신들 가운데는 가장 힘이 쎄서 다른 모든 신들을 제압할 수 있는 신이 하나만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적극적으로 전파하고 실천하려는 시도들이 나타났습니다. 정령숭배가 다신교를 거쳐 유일신교로 진화되는 과정을 보여준는 것입니다. 물론 그것은 쉬운 과정은 아니었습니다.

기원전 14세기 에짚트 왕 아멘호테르 4세는 유일신교를 도입하려는 과감한 시도를 하였습니다. 통치 초기인 기원전 1346년 생명을 주는 태양의 원반인 Aten을 유일신으로 정하고 제국의 이름을 버리고 자신을 ‘아텐의 종’이라 하여 '아케나텐'이라고 명명하였습니다. 그는 옛 사원들을 폐쇄하고 모든 종교재산들은 아텐의 승려들에게 몰아 주며 모든 종교문서에서 ‘신 들’이라는 복수명칭을 삭제하고 다른 신들의 승려들을 해체시킬뿐 아니라 아켈타텐이라는 아켄신에게 봉헌한 도시를 다시 만들고 수도를 그곳으로 옮기는 등 유일신교 수립에 전력하였습니다.

그러나 아켄나텐의 새로운 종교는 다신교에 익숙하였던 백성들에게는 너무나 생소한 것이어서 17년 동안의 그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가 죽자 함께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그의 아들이 파라호가 되자 아톤신을 버리고 그전에 최고신이었던 아몬을 아톤 대신 에짚트의 최고신으로 인정하고 다시 다신교로 방향을 선회하였던 것입니다.

서양역사에 보면 에짚트에서 실패한 유일신교의 시도가 이스라엘 민족가운데서 결정적으로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습니다. 물론 구약성경에 보면 이스라엘 민족들 가운데서도 황금송아지를 섬기고 바알신을 섬기는 등 다신교의 흔적들이 적지 않지만 초기부터 유일신에 대한 의식이 뚜렷이 나타나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의 조상이라고 하는 아브라함은 우상 만드는 집 ㅊ출신(다신론자)으로 여호와의 명을 따름(유일신론자)으로 이스라엘 민족의 조상이 되었고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 등 세 유일신교의 원조가 되었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다신론자에서 유일신론자로의 사고의 혁명적인 전환을 이룬 대표적인 인물이며 이러한 전환은 정신사적인 면에서 세계를 크게 변화시켰다고 하겠습니다.

<늘푸른나무-나이를 잊고 늘 푸르게 살려는 사람들을 위한 읽을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