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진/늘푸른나무(www.webegt.com)/문화산책/2021년 5월 1일>*<이달의 시-어버이 살아신 제-정철>*<이야기 미국사 (43)-1873년 경제공황>*<김준자 작가의 영미문학산책- 헤밍웨이의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 <이달의 시-4월-오세영>*<이야기 미국사(42)-화이트 크리스마스를 작곡한 어빙 벨린>*<이달의 영화-오스카 작품상 수상작-노매드랜드(Nomadland>>

<이달의 시>

송강 정철의 어버이 살아신 제

【현대어 풀이】

어버이가 살아 계실 때 섬기는 일을 잘 하여라.

돌아가신 후에 슬퍼한들 무엇하리.

평생에 다시 못할 일이 부모 섬기는 일뿐인가 생각하노라.

*조선 선조 때 정철(鄭澈)이 45세 때인 1580년(선조 13) 강원도관찰사로 재직하면서 백성들을 계몽하고 교화하기 위하여 지은 연시조 <훈민가(訓民歌)> 16수(首) 중 네 번째 시조로, 자효(子孝), 즉 부모님에 대한 효도 권유하는 내용이다. 살아 계실 동안에 부모 공경을 열심히 해야 함을 강조한 것이다.

<훈민가>는 그 이름이 보이듯이 백성을 교화하고 계고(戒告)를 주되, 유시(諭示)나 포고(布告) 대신에 노래로 읊어서 익히기 쉽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교훈적이기는 하나, 지은이의 놀라운 글 솜씨에 얹힌지라 은연중에 인정의 기미를 건드려 감동을 불러일으킨다.

<이야기 미국사 43 >

1873년 경제공황

코로나바이러스19 팬더믹 이후 미국의 경제공황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은데 250년의 미국역사상 경제공황은 여러차례 있었다. 그 가운데 가장 타격이 심했던 것이 제1차 세계대전이 종전된후 1930년대 미국을 덮쳐 10여년이나 계속되었던 경제공황이다. 그에 미치지는 못하지만 1873년 오스트리아에서 시작된 세계적인 경제불황으로 그 여파가 몇 달 후에는 미국까지 덮쳐서 5개년동안 계속되면서 수 천개의 기업들을 도산시키고 임금들이 침체되었으며 실업자 수치가 급격히 상승하였다. 1873년의 공황은 일시적으로 남북전쟁(1861-1865) 종전에 뒤따랐던 대량 제조업의 증가를 침체시켰으며 특히 남부재건계획을 크게 위축시켰다.

1873년 초 국내경제는 외형상의 취약점을 보이지 않았지만 실제로는 남북전쟁 종료 8년만에 수 만 마일의 철로를 깔았고, 수 천갱의 공장들을 설립하였으며 증권시장이 솟구치고 있었다. 전쟁의 피해가 심했던 남부에서도 농업이 반등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대부분의 철로들은 대출받은 돈으로 건설되었다. 1873년 6월 비엔나증권시장이 추락하였다. 유럽에서의 소용돌이가 미국에서 가장 큰 은행의 하나인 Jay Cooke and Company가 1873년 9월 18일 파산을 선언함으로 미국에까지 번졌다. Cooke의 파산은 철로회사들에 큰 타격을 주어 당시 364개의 철로회사들 가운데 89개가 이 공항중에 파산하였고 철로주식들이 전체 가치의 3분의 1을 손실하였다.

미국 노동자들에게 1873년의 공황은 아주 강력한 일격이었다. 실업율이 노동력의 14%에 이르렀으며 평균임금은 급격하게 감소되었다. 1870년 말 철도주식이 회복되기까지 노동자의 임금이 1873년 이전으로 회복되는데는 거의 한 디케이드(10년)가 걸렸다.

1873년의 공황은 그랜트 대통령(1822-1885) 행정부의 불운했던 무능을 들어냈다. 비록 전쟁영웅이요 우수한 군사전략가였민 그랜트는 갑자기 불어닦친 경제적인 재난을 대처하기에는 능력이 부족함을 보여주었다. 실제적으로 어떤 역사가들의 견해에 의하면 그랜트 행정부는 현금수급을 줄이고 신용대출을 가급적 줄이며 몇몇 대형회사들에 대한 파산을 신속히 시행했더라면 쉽게조정할 수 있는 사태를 우물주물하다 키웠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러한 공황가운데서도 Cooke회사는1869년에 완공된 기존의 대륙횡단철로와 경쟁할 수 있는 다른 로선을 착공하였으나1883녀까지도 완공하지 못했다.
Cooke가 파산을 발표한 1873년 9울 19일을 Black Friday로 부르는데 최근에 와서는 추수감사절 다음날인 금요일을 크리스마스 쇼핑하기에 가장 바쁜날이라 하여 Black Friday로 부르고 있다.

1872년 시간당 임금이 $1.46 이었는데 1879년에 $1.12이었다는 사실을 다실을 감안하면 당시 임금노동자들의 생활이 얼마나 비참하였을런지를 상상할 수 있다.

 

<김준자 작가의 영미문학 산책>

김준자 작가의 서른 번째 글

헤밍웨이의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

신문 기자 제이크 반즈와 작가 로버트 칸은 일차 대전이 끝난 후 파리에서 만난다. 반즈는 칸을 만날 때마다 언제나 적기 적소에 그를 만난다고 생각한다.

칸은 부자 유대인 부모를 가진 아들로 한때는 프린스톤 대학에서 권투 선수로 유명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결혼했으나 서로 맞지를 않아 부인과 늘 싸우며 살다가 부인이 다른 남자와 바람이 나서 집을 나간다. 이후 칸은 캘리포니아로 이사하여 작가들을 만나면서 예술에 관심을 두게 된다. 칸은 글도 쓰고 술도 마시고 정구도 치지만 술친구, 글 쓰는 친구 그리고 테니스친구가 따로 있다. 제이크 반즈는 칸의 테니스 친구이다.

제이크 반즈가 미국 신문사에서 일하다 전쟁에 참여하여 부상을 입고 성 불구자가 되어 사랑하는 여인, 브랫 애슬리와 결혼을 할 수 없게 된다. 제이크는 친구들과 어울려 술을 마시다가 싫증이 나면 물고기를 잡으러 가든가 투우를 보러 가는 것으로 시간을 보낸다.

어느 날 밤, 제이크가 거리의 여인과 함께 술을 마시다 그곳에서 저녁식사를 하고 있는 친구들을 만난다. 그 중에는 칸도 있다.

후에 브랫 이 여러 명의 남자들과 같이 들어오자 칸은 그들 중 브랫 에게 매력을 느끼어 그녀에게 댄스요청을 한다. 그러나 그녀는 제이크와 데이트가 있다고 거절한다.

제이크가 브랫을 택시에 태우고 드라이브를 하면서 이야기를 나누지만 각자 마음속에 있는 그의 부상에 대해서는 말을 피한다. 두 사람은 카페에 되 돌아와 브랫만 카페로 들어간다. 다음날 칸이 제이크를 한 구석으로 데리고 가서 브렛에 대해 진지하게 묻는다. 같은 날 제이크는 그의 친구 빌 골르톤이 프랑스에 온다는 소식을 듣고 그를 기다리고, 브렛은 칸과 함께 센 새바스티안으로 떠나면서 후에 만나기로 약속하고 헤어진다.

빌이 도착하자 칸은 차를 빌려 빌과 제이크와 함께 미리 예약했던 호텔로 간다. 다음날 아침 이들은 버스를 타고 낚시터에 가서 고기를 많이 잡고 영국 사람인 윌슨 헤리스와 만나 사귀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다음날, 팜클로나에 도착한 모두는 첫날밤에 투우장에 가서 투우를 보고 포도주를 마시면서 모두가 흥분된 가운데 한껏 즐길 동안 왠지 칸은 동석은 했지만 자기가 있을 곳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며 우울해 한다. 이곳 축제는 주일 정오에 시작되어 7일 동안 댄스, 시위행진, 종교 의식, 투우 등이 진행된다.

그날 투우 경기의 투우사는 호텔에서 같이 유하던 20살 된 미남, 페드로 로매로 이다. 그가 싸움에서 이기자 브렛은 젊은 투우사에게 반하여 칸을 모르는 사람처럼 대한다. 다음날 아침 칸은 투우사 방에 간다. 브렛과 로매로 두 사람이 같이 있는 것을 본 칸은 화가 잔뜩 나서 로매로를 실컨 패주고 떠난다.

그날 퉁퉁 부운 얼굴로 로매로는 투우경기에 나온다. 그의 상대 투우는 최근에 두 사람의 투우사를 죽인 유명한 황소이다. 로매로는 그를 멋지게 해치우고 투우가 끝난 밤, 브랫과 로매로 두 사람은 그곳을 떠나고 제이크는 만취한다.

이제 축제는 모두 끝나고 모인 사람들도 헤어진다. 혼자 세바스천에 남은 제이크는 마드리드 몬타나 호텔로 오라는 브렛의 전보를 받는다. 다음날 그는 급행열차를 타고 마드리드에 도착하자 브렛은 혼자였다. 브랫은 서른넷인 자신과 열아홉 살인 로메로의 미래를 그려보며, 헤어지기로 결정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브렛은 마이크도 아니고 로버트도 아닌 성불구자인 그의 첫사랑 제이크에게 돌아온 것이다.

이로부터 두 사람은 찰나적인 삶을 버리고 규범적인 삶을 살기로 한다.

1920년대, 세계대전으로 인해 전쟁에 대한 환멸과 삶의 방향을 잃고 파리, 팜플로나, 스페인 등지에서 새로 운 가치를 찾아 헤매는 자신과 주변인들이 겪었던 혼돈과 방황을 그린 이 책은 출간 후 미국 문단 뿐 아니라 사회 전체에 큰 충격을 가져다 주었다.

시대적 불안과 상실감을 강조한 이 책은 헤밍웨이의 자전적 요소가 강한 소설로 27살의 헤밍웨이로 하여금 20세기 미국 문학의 개척과 미국 문단을 이끌어 갈 젊은 작가로 부상한다.

*현재 캘리포니아주의 실비치에 거주하면서 YTN 방송과 신문 등에 자유기고가로 활동하고 있는 김준자 님은 저서로 '한인보''하룻밤에 읽는 셰익스피어 전집' 등과, 번역서로 '삶을 풍요롭게 하는 생활의 지혜'등이 있으며 대산문화 재단과 한국문학 번역원의 지원으로 박완서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To dream of a Mountain)', 황석영 '바리데기(Princess Bari)', '심청, 연꽃의 길(Sim Cheong, the way of the Lotus)', 일당 스님 '어머니 당신이 그립습니다(The Lost Mother)' 등을 영어로 번역, 출판했습니다.

<이달의 시>

4월 / 오세영

언제 우레 소리 그쳤던가,
문득 내다보면
4월이 거기 있어라.
우르르 우르르
빈 가슴 울리던 격정은 자고
언제 먹구름 개었던가.
문득 내다보면
푸르게 빛나는 강물,
4월은 거기 있어라.
젊은 날은 또 얼마나 괴로웠던가.
열병의 뜨거운 입술이
꽃잎으로 벙그는 4월.
눈뜨면 문득
너는 한 송이 목련인 것을,
누가 이별을 서럽다고 했던가.
우르르 우르르 빈 가슴 울리던 격정은 자고
돌아보면 문득
사방은 눈부시게 푸르른 강물.

출처:?https://itsmore.tistory.com/entry/4월-시모음[촌부(村夫)]

<<이야기 미국사 42>-미국의 음악가들

'화이트 크리스마스"를 작곡한 어빙 벨린(Irving Berlin)

20세기 미국에서 가장 인기있었던 다작의 작곡가는 어빙 벨린(1888-1989)으로 “화이트 크리스마스,” “God Bless America,” “Puttin’On the Rits,”를 위시해서 수많은 곡들을 작곡해서 2차 대전(1939-1945)때 국민들의 사기를 돋아주고 영원한 국민가요들의 반열에 오르게 하였다.

원래 이스라엘 발린(Israel Baline)으로 불렸던 벨린은 튜먼이라고 하는 조그마한 시베리아의 유대인 대가족에서 출생하였다. 집단학살을 피한 이 가족들은미국에 정착한 유대인 이민자들이 처음 정착하는 만하탄 동쪽 저지대에서 긴장한 가운데 자리를 잡아 갔다.

뉴욕의 소란한(야단스러운) 거리에서 성장한 이 어린벨린은 신문팔이, 행상, 그리고 차이나타운의 노래하는 웨이터로 일을 하였다. 1896년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자 가족들을 부양하지 않으면 안되었던 벨린은 학교교육이라고는 2년 밖에 받지 못했다.

?음악교육은 정식으로 받지 못했지만벨린은 시간 있을 때마다 노래를 작곡하였으며 열 여덟살 때인 1907년에 첫 악보를 출판하였다. 그의 첫번째 곡인 Tin Pan Alley 가 히트를 하였으며 1911년에는 Alexander’s Ragtime Band가 발표되었다.

한창 인기가 치솟던 뮤지칼 스타 벨린은 제1차 대전중(1914-1918) 군에 징집되어 잠시 주춤하였으나 제대후 1920년대에 “Remember,” “Always,” 등 히트곡들을 연달아 발표하였다.

1938년 그의 전성기에 벨린은 가수 Kate Smith(1909-1986)를 위하여 “God Bless America,”를 작곡하였는데 즉각적인 인기를 끌었으며 1942년에는 “White Christmas”를 발표하였는데 그의 작품가운데 가장 성공적인 곡이라고 할 수 있다.

2차 대전후 벨린은 엄청난 속도로 작곡을 계속하였으며 1960년대에 그가 은퇴할 때에는 19편의 브로드웨이 쇼와 18편의 영화 음악 그리고 1천 500여 곡을 작곡하였다. 그 후 그는 만하탄에서 거의 은둔자로 생활하였지만 1988년 미국이 가장 사랑하던 작곡가로서 거대한 카네기홀에서 100회 생일축하를 받기도 하였다. 그는 다음해 101세에 세상을 떠났다.

벨린은 1952년 공화당 대통령 후보였던 아이젠하워를 위하여 캠패인 송 “I Like Ike”를 작곡하여 그의 당선에 기여하기도 하였다.

 

<이달의 영화>

영화 ‘노매드랜드’(Nomadland)

“정처 없이 떠돌아도 이 세상은 살아갈 가치가 있다” 아카데미상 놓고 ‘미나리’와 각축

[백세시대=배성호기자] 2021년, ‘차박의 시대’라 불릴 만큼 많은 사람들이 자동차를 이용한 캠핑을 즐기고 있다. 주말이면 공기 좋고 물 좋은 산과 바다로, 바퀴 닿는 곳이면 어디든 떠나 치유의 시간을 가진다. 그런데 이 ‘차박’이 여가생활이 아닌 생존을 위한 선택이라면 과연 ‘펀’(fun, 즐거움)할 수 있을까. ‘펀’이라는 이름을 가진 여성을 통해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는 영화 한 편이 개봉된다. 올 아카데미 영화제에서 ‘미나리’의 최고 경쟁작으로 주목받는 영화 ‘노매드랜드’ 이야기다.

지난해 9월 막 내린 제77회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대상격인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영화 ‘노매드랜드’가 4월에 개봉한다. ‘파고’(1997)와 ‘쓰리 빌보드’(2018)를 통해 두 차례나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프랜시스 맥도먼드가 제작과 함께 또다시 인생 연기를 선보여 큰 화제를 모은 작품으로 연출을 맡은 중국계 미국인 클로이 자오 감독 역시 아카데미 작품상과 감독상 부문 후보에 이름을 올려 한국계 미국인 정이삭 감독과 수상을 놓고 격돌해 주목받고 있다.

작품은 일자리가 사라져 사람들이 모두 떠나 폐허가 된 마을에 거의 유일한 주민인 ‘펀’(프랜시스 맥도먼드 분)이 한 창고에 자신의 살림살이를 맡기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사별한 남편의 옷 냄새를 맡으며 잠시 슬픔에 빠져있던 그녀는 이내 창고 문을 걸어 잠그고 숙식할 수 있도록 개조한 밴에 필요한 가재도구만 싣고 마을을 떠난다.

이때부터 그녀는 일자리를 찾아 유랑하는 자동차 유목민(노마드, Nomad)이 된다. 펀은 ‘아마존’ 같은 대기업의 물류창고에서 단기 아르바이트를 하고 그렇게 번 돈으로 캠핑장 이용료를 내며 하루하루를 버틴다. 하지만 밤이면 찾아오는 지독한 외로움과 비좁은 차에서 잠을 자는 것은 좀처럼 적응이 되지 않는다. 한파라도 찾아오는 날에는 그 고통은 배가됐다.

그러다 함께 일하던 동료를 통해 슬기롭게 유랑하는 노하우를 알려주는 ‘밥 웰스’를 알게 되고 그의 유랑자 모임에 합류한다. 그곳에서 그녀는 다양한 이유를 가지고 정처 없이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을 알게 된다.

2008년 금융위기로 직장에서 잘린 후 모든 것을 잃고 생을 마감하려다 반려견 때문에 마음을 고쳐먹고 여행에 나선 사람, 동료의 죽음으로 잘 다니던 회사를 관두고 길 위에 오른 사람, 부모와 함께 여행에 나섰으나 둘 다 암으로 잃고 혼자가 된 사람, 시한부 인생을 선고 받고 멋지게 삶을 마무리하고자 차를 끌고 나온 사람 등 사연도 제각각이다. 펀은 이들에게서 생존을 위한 다양한 팁을 배우며 유목민으로서 한 단계 성장한다.

길 위의 만남은 이별로 이어지고 다시 혼자 남은 펀. 그녀는 본격적인 자동차 유목민으로 미 전역을 떠돈다. 낮에는 일을 하고 오후와 주말에는 그 지역 명소를 돌며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도 넓힌다. ‘데이브’라는 또 다른 방랑객과 묘한 관계로까지 발전한다.  펀을 유목민으로 만든 삶은 그녀에게 호의적이지 않았다. 그녀의 전부나 마찬가지인 밴이 망가진 것이다. 이로 인해 그녀는 유랑생활의 지속 여부를 두고 선택의 기로에 선다.

펀이 선택한 노마드의 길이 편하지 않다. 좁은 밴에서 바구니에 볼일을 보고, 몸을 구겨서 자야 하는 험난한 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펀을 비롯한 유목민들은 저마다의 신념으로 이를 이겨낸다. 그들은 지독한 자본주의로 인해 ‘광란의 땅’(mad land)이 된 미국이 낳은 피해자들이지만 “이 세상은 살아갈 만한 곳이지, ‘광란의 땅은 아니야’(No mad land)”라고 말하는 듯하다. 

이를 증명하듯 카메라는 인간의 자본에 물들지 않은 미 곳곳의 자연풍경을 쫓는다. 펀의 시선을 따라 끝없이 바다가 펼쳐진 캘리포니아 해안도시, 거대한 나무들로 가득한 핸디우즈 국립공원 등을 바라보면 이 세상은 험난하지만 그래도 살아갈 가치가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배성호 기자 bsh@100ssd.co.kr

<나이를 잊고 늘 푸르게 살려는 사람들을 위한 읽을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