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푸른나무/Gallery/기독교 미술 산책(1)/2011년 2월 15일>

김상신의 '기독교 미술' 산책 (2)

기독교와 미술

고대로부터 종교와 미술은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신을 좀더 실감나게 하기 위해서는 신을 형상화 할 필요가 있었으며 그 흔적들은 원시인들이 굴 속에 그린 그림이나 암벽에 그린 그림들에서도 찾아볼 수 가 있다. 그 후 대부분의 종교들이 그림이나 조각들을 종교적인 목적을 위해 즐겨 활용해왔는데 유독 구약의 유대교만은 예외였다. “내 앞에 어떤 형상이든지 만들지 말며 절하지 말라”는 십계명의 가르침에 따라 그림이나 조각으로 하나님의 형상을 만드는 것은 ‘우상숭배’로 금기시하였기 때문에 유대교에서는 미술이 자리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성경의 권위를 무엇보다 절대시하며 구약의 가르침까지도 문자적으로 받아들인 일부 극단적인 개신교에서도 유대교의 전례를 그대로 따랐다.

이런 이유 때문에 구약을 보면 신의 형상을 글로 표현한 것을 많이 볼 수 있으며 그런 점에서 문학적인 표현들이 풍부하고 아름다워 성경의 문학적인 가치를 높이 평가하기도 하지만 미술적인 표현은 거의 찾아볼 수가 없다. 시편 23편 같은 것은 문자로 표현된 한 폭의 그림이다. 그러나 후대에 기독교인 화가들에 의하여 그림의 소재로 사용되기는 하였지만 유대교나 유대교인들에 의해 그림으로 그리려는 시도는 전혀 없었다. 종교개혁 이후의 개신교회에서도 동방 정교회나 가톨릭 교회와는 달리 기독교 미술이라 할만한 것이 별로 없는 것도 역시 같은 이유에서이다.

그러나 전통적인 기독교회에서는 미술에 대한 관심이 적지 않았던 듯 하다.

로마 카타콤의 기독교 미술

물론 예수님이나 제자들이 미술에 관심을 가졌다거나 그림을 그려가며 복음을 전하였다는 성경의 기록은 찾아볼 수 없다. 그러나 핍박 가운데서 다른 사람들 몰래 예배하던 최초의 신도들이 그림을 통해서 자신들의 신앙을 재확인하고 서로 격려하였던 흔적들을 로마의 카타콤에서 찾아볼 수 있으며 그것들이 지금까지 알려진 가장 오래된 기독교 예술 또는 최초의 기독교 미술의 예라고 말할 수 있다.

St. Priscilla 카타콤의 한 갤러리 묘지, 벽에는 그림들이 그려져 있고 밑에는 시체를 놓았던 자리들

팔레스틴에서 시작된 예수와 그의 가르침이 소아시아와 로마로 퍼져나갈 때 비록 세상적인 힘이 없는 평범한 무리들에게였지만 강력한 기세로 번져나갔다. 예수에게서 그들이 받아들인 신앙은 죽음의 두려움보다 더 강열 하였으며 장로들과 감독들의 지도 아래 초대교회는 강력한 조직으로 발전하면서 제국의 안정을 해치는 위험한 집단으로 생각되었다. 기원 64년 로마 성이 불 난 것을 기화로 네로 황제는 기독교인들을 잡아 죽였다. 베드로 사도가 꺼꾸로 십자가에 못 박혀 순교한 것이 이때이다.(반 미치광이인 네로 황제가 시를 읊기 위해 로마 시에 불을 질렀다는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지만 확인된 것은 아닌 듯 하다)

시체를 다루는 로마의 법은 분명하고 무척 정중하였던 듯 하다. 아무리 죄인의 처형된 시체라도 친척이나 친지들에게 인계하여 장사 지낼 수 있게 허락하였는데 아리마대 요셉이 예수의 시체를 자신의 무덤에 장사 지낸 신약의 기록에서도 알 수 있다. 로마에서 처형된 기독교인들의 시체들 역시 친지들에게 넘겨졌으나 위생상 이유로 로마 성밖에, 지하에 매장하도록 하였는데 Catacombas에 있는 Appian Way 지하였다. 이미 유대민족을 위시하여 매장을 선호하는 사람들의 공동묘지가 있던 이 지역 지하는 화산재가 쌓여 이루어진 곳으로 비교적 쉽게 굴을 파서 채플이나 갤러리 스타일의 묘지를 만들수 있었고 서로 연결된 지하도를 만들어 광장을 중심으로 벽 쪽에 가족이나 구역단위 무덤들을 만들었다. 벽 여기저기에는 ‘쉼터(rest)’ 또는 ‘잠자는 곳(sleep)’라는 글들이 쓰여 있어서 “죽음은 단지 부활과 영생을 기다리며 쉬는 곳”이라는 초기 기독교인들의 신앙을 증거하고 있다.

카타콤 벽에 그려져 있는 '예수상'과 '성모 마리아와 아기 예수' 그리고 구약의 '아담과 이브' 모습

기독교인 학살이 최고조에 달했던 4세기 초까지 약 600만구의 기독교인 시체들이 로마의 주위 지하에 있는 50여 개의 카타콤에 안치되었다고 한다. 이와 같은 깜깜하고 시체들이 즐비한 악몽 같은 카타콤의 통로들이 크리스천들이 모여서 복음을 듣고 성례 전을 행하며 성찬을 나누는 자리가 되었다. 절망적인 상황에서 지옥 같은 어둠을 뚫고 카타콤을 방문한 신도들에게 기독교의 기본 신앙을 특히 죽음이 끝이 아니라는 신앙을 상기시켜주고 확신을 갖게 하는 것이 무엇보다 필요하였다. 여기에서 가장 직접적인 방법으로 사용된 것이 그림이었다. 이미 2세기에 크리스천들은 카타콤의 벽에다가 하나님의 창조솜씨를 찬양하며 천국의 모습을 보여주는 그림들과 성경(구약)의 이야기들을 주제로 한 그림들을 그렸다. 성 Priscilla와 성 Domitilla 카타콤에는 아직도 그러한 그림들이 남아 있으며 계속 새로운 그림들도 발견되고 있다..

물론 이 벽화들은 대부분이 표현이나 기법에서 예술작품이라 부르기에는 너무 유치하고 보잘것없지만 상징적인 수법을 통해 기독교의 교리를 가르쳐주고 영감을 얻게 하였다는 점에서는 훌륭한 예술품이었다.

카타콤에는 아담과 이브, 노아, 다니엘, 요나의 이야기 등 구약에 나오는 이야기들을 소재로 한 작품들이 있는가 하면 예수를 물고기나, 포도나무나 양 등으로 표현한 그림들도 있으며 성만찬에 사용한 것으로 보이는 유리잔들도 발견되는데 잔의 밑에 베드로와 바울의 초상화가 새겨져 있는 것들도 있고 'Vivas in Deo'나 'In pace Christ' 와 같은 글이 새겨져 있는 것들도 있다.

특이한 것은 흔히 볼 수 있는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의 모습’은 카타콤 벽화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이다. 당시 로마제국 치하에서 십자가에 달린다는 것은 불명예스러운 것이었기에 그런 모습을 원치 않았던 듯 하며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의 그림이 뻐젓이 내걸리게 된 것은 1,000여 년이 지나 기독교가 강력해진 중세기였다고 한다.

카타콤에서는 조각품들도 나왔는데 대표적인 것이 기원 314년 이전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측되는 ‘선한 목자(The Good Shepherd)”이다 제법 세련된 작가의 작품으로 보이는 이 조각품은 꼬불꼬불한 머리에 단정한 희랍식 복장 등으로 미루어 보아 희랍의 신 아포로를 연상시키지만 한 마리 잃은 양을 찾아 어깨에 메고 즐거워 하는 모습이 분명 예수의 비유에 나오는 '선한 목자'와 함께 예수를 상징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무척 세련된 작품으로 조각가가 평소에 자신의 신앙을 이렇게 표현하여 만들었다가 기독교가 공인되고 박해가 끝난 다음에 같다 놓은것이 아닌가 추정하고 있다. 현재는 로마에 있는 Lateran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카타콤은 4세기 말 기독교가 로마의 국교가 된 이후에도 한동안 묘지로 사용되었으며 그로부터 약 100년 후 야만인들에게 로마가 점령된 후로는 카타콤이 방치되어 잊혀져 버렸다가 1578년 포도원을 가꾸던 한 농부에 의하여 카타콤이 발견됨으로 빛을 보게 되었다.

김상신 님은 은퇴후 본 <늘푸른나무>를 제작하면서 주로 역사에 관한 글들을 쓰는데 그동안 <역사로 배우는 미국>과 <미켈란젤로 천정벽화의 비밀>을 연재하였으며 현재는 <지리로 배우는 미국>을 연재하고 있으며 역서로는 <역사와 희망>, <크리스천의 역사이해> 등이 있다.)

 

<늘푸른나무(webegt.com)-나이를 잊고 늘 푸르게 살려는 사람들을 위한 읽을거리>